(전 국제가사원장, 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숙도’를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능력으로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젊을 때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구분합니다. 옳든지 그르든지,잘하든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인생의 경륜이 쌓이면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 닫습니다. 선한사람에게 악한 면이 있고, 악한사람에게 선한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의견에도 틀린 점이 있고,틀린 의견에도 바른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판단에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 성숙의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섣부르게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동기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고전 4:5), 두 번째 이유는 징벌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롬 14:10). 그 명령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성숙해야하고 또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성숙해집니다.
남을 수용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완전주의자입니다. 그들은 남의 불완전뿐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불평과 긴장 가운데 삽니다. ‘미성숙한 완전주의자’는 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입니다. 그는 지구 위에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원했습니다. 그는 지상에서 가장 우수한 종족이라고 믿는 게르만족이 지배 종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북구 백인들 간의 결혼을 장려했습니다. 동시에 열등한 종족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유대인을 열등한 종족으로 치부하고 집단 학살을 했습니다.
‘미성숙한 완전주의’가 가져오는 파괴의 극단적인 예입니다. 완전주의는 자신과 이웃을 파괴합니다.
완전해지라는 말이 성경에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너희도 완전하여라”(마5:4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완전하라고 하신 것은 편파적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선한 사람 밭이나 악한 사람 밭이나 동일하게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처럼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한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완전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완전한 모습을 닮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또 주님의 사역도 완전을 추구하며 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딤후 4:7~8)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흠 없이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동시에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모두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이웃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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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제가사원장, 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숙도’를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능력으로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젊을 때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구분합니다. 옳든지 그르든지,잘하든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인생의 경륜이 쌓이면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 닫습니다. 선한사람에게 악한 면이 있고, 악한사람에게 선한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의견에도 틀린 점이 있고,틀린 의견에도 바른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판단에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 성숙의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섣부르게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동기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고전 4:5), 두 번째 이유는 징벌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롬 14:10). 그 명령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성숙해야하고 또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성숙해집니다.
남을 수용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완전주의자입니다. 그들은 남의 불완전뿐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불평과 긴장 가운데 삽니다. ‘미성숙한 완전주의자’는 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입니다. 그는 지구 위에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원했습니다. 그는 지상에서 가장 우수한 종족이라고 믿는 게르만족이 지배 종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북구 백인들 간의 결혼을 장려했습니다. 동시에 열등한 종족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유대인을 열등한 종족으로 치부하고 집단 학살을 했습니다.
‘미성숙한 완전주의’가 가져오는 파괴의 극단적인 예입니다. 완전주의는 자신과 이웃을 파괴합니다.
완전해지라는 말이 성경에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너희도 완전하여라”(마5:4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완전하라고 하신 것은 편파적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선한 사람 밭이나 악한 사람 밭이나 동일하게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처럼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한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완전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완전한 모습을 닮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또 주님의 사역도 완전을 추구하며 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딤후 4:7~8)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흠 없이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동시에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모두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이웃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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